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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가을, 그러나 늦지 않은 우리의 가을

 (클레버스)모희서 기자 =  만추의 시간은 소멸의 시간을 상징한다. 나뭇잎은 떨어지며 동물들은 겨울잠을 준비한다. 누구나 끝을 준비하는 만추의 어느 날 두 남녀가 만난다. 모든 것이 시들어 가는 시점에 싹트는 그들의 사랑이 궁금하다.

‘만추’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훈’(현빈)과 사형수로 복역 중인 ‘애나’(탕웨이)의 삶은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햇빛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영화 ‘만추’는 그런 그들이 서로에게 짧지만 강렬한 햇빛이 되어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폭력을 휘두른 남편을 살해하고 감옥에 들어간 애나는 7년 뒤 어머니의 장례식 때문에 72시간의 자유를 얻게 된다. 오랜만의 외출에 헤어스타일도 바꿔보고 화장도 해보지만 그녀에게 ‘여자’의 모습은 낯설 뿐이다. 시종일관 세상에 무뚝뚝하던 그녀가 ‘훈’을 만나게 된다.

‘만추’는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이지만, 정작 115분의 러닝타임 동안 ‘사랑해’라는 대사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만추’는 그렇게 촉촉하게 스며드는 영화다. 직접적인 대사보다는 소품이나 인물들의 심리묘사를 통해 영화는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안개와 비의 도시 ‘시애틀’이라는 배경 또한 애나와 훈의 짧은 로맨스를 더욱 감미로우면서 애틋하게 그려내고 있다.
‘안개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지금 충분히 햇빛을 즐겨 두세요. 인생의 좋은 시절은 금방 갑니다. 마음을 열고 사랑하세요.’ 라는 오리버스 운전기사의 대사는 영화의 전반적인 주제와 두 남녀의 사랑을 대변해 주기 충분하다. 이름도 몰랐던 두 남녀는 서로의 안개를 굳이 걷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햇빛이 올 때까지 곁에 있어 주었을 뿐이다.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살던 두 남녀를 이어준 시계는 사흘간 두 남녀의 시간을 공유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여자는 그저 고객으로 밖에 보이지 않던 훈의 눈빛이 진지해지고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애나의 얼굴에 미소가 생길 때 그들의 시간은 끝이 난다.

비록 사흘간의 짧은 사랑이야기이지만, 그들의 모습이 남겨준 여운은 진하게 남아있다. 서로가 서로를 비춰주는 햇빛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두 사람의 삶이 어떻게 전개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안개 낀 삶이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은 이유는 그날의 햇빛을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잔잔하게 밀려오는 슬픔과 사랑이야기가 어우러진 ‘만추’는 오는 17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