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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달이 아주 환하게 우리를 비춰주고 조금은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공연장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발걸음은 공연에 대한 기대로 인하여 그 누가 보더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걸음이었다. 
 
 生음악극 [도시녀의 칠거지악]의 가장 큰 장점은 딱딱한 기계를 통해서 나오는 배경음악이 아닌 가수가 직접 불러주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제쯤 공연이 시작될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하염없이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시선은 동시에 한 군데로 향했다. 마치 재즈바에서나 볼법한 푸근한 인상의 여자가수가 직접 건반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그녀의 표정은 노래를 듣는 우리마저도 그녀에게 빠져들기 충분했다. 감수성이 충만하고 괜시리 우울해지는 가을이라 그랬는지 모른다. 그녀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공연을 관람하기 전 관객들의 마음에 은은한 카페라떼같은 울림을 주었다. 마치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내 마음은 그녀의 노래로 이미 매료되었고 이에 따라 공연에 대한 기대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연극 [도시녀들의 칠거지악]은 주인공인 3명의 안나가 벌이는 일곱 가지의 악행에 따라 전개된다.
 

 
 33세의 안나. 그녀는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뚱뚱한 몸매에 콤플렉스를 느낄법도 하지만 그녀는 매사에 당당하다. 선자리를 주선하는 엄마의 말에도 난 지금의 삶이 좋다며 그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어느날 그녀는 중학교 동창회에 참석한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차가운도시여자(이하 차도녀)가 되어 있다. 하지만 안나는 아니다. 차도녀가 된 친구들은 안나에게 성형수술을 권고하며 그녀의 외적인 모습을 개선시키라고 충고한다. 안나는 순간 흔들리지만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자만심. 이 에피소드의 악행은 자만심이다. 안나의 자만심일까. 친구들의 자만심일까. 얼굴이 예쁜 여자, 몸매가 날씬한 여자, 이혼을 했더라도 위자료로 병원 한 채를 받아서 친구들 앞에서 당당한 여자. 이런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자만심일까. 사회가 정해놓은 틀안에 자신이 꼭 맞다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그녀들의 악행이 자만심이다.
 

 
 다음 악행은 동일시. 사실 위에 사진은 1%의 희망이라는 에피소드를 다루기 위해 나왔던 장면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장면에서 동일성을 경험했다. 요즘 대세라는 스마트폰을 들고 사람들은 지하철에 그들의 몸을 맡긴다. 모두들 겉으로 보기엔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눈을 들여다 보면 초점이 없다. 머리속은 하얀 백지장이다. 생각이 없다. 차도녀, 차도남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개개인이 다르고 각자의 개성이 있다. 잘하는 것이 다르고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녀, 도시남이 되는 순간 모두가 같아진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똑같은 부속품일 뿐이다. 사회라는 큰 기계를 운영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우리는 그저 일부분일 뿐이다.

 각자의 이름이 다르고 꿈이 다르고 희망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사람이 되면서 표정이 없고 생각이 없으며 따뜻한 마음이 없는 냉혈한들이 되었다. 나 자신을 숨긴것. 답답한 기성복안에 자신을 숨긴 악행. 이것이 동일성에 의한 악행이다.
 
 

 마지막 악행은 무감각이다. 무감각. 느끼지 못하는것. 원래부터 느끼지 못했던 것인지 점차 느끼게 되지 못한 것인지 모른다. 후자가 아닐까. 사람의 마음은 본디 따뜻하다. 희노애락을 느끼며 우리는 감정에 충실한 동물이다. 기쁘면 웃을 줄알고 슬프면 눈물을 흘릴줄안다. 화가나면 분노하게 되고 또한 사랑을 할 줄 안다.

 33살의 안나는 혼자 극장에 갔다. 주위에 앉은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웃기도하고 울기도 한다. 공포를 느껴서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 그것을 마음껏 표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나는 그러지 못한다. 재미있는 장면에도 웃을 줄 모르고 감동적이고 슬픈 장면에 눈물을 흘릴줄 모른다. 이 장면을 보면서 안나가 내모습같이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내 모습이다. 언제부턴가 내 감정에 솔직해 지지 못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재밌다고 웃고 슬프다면서 울고 무섭다면서 공포에 떤다. 나는 느끼질 못한다. 심장에 반응이 없다.
 
 연극 [도시녀의 칠거지악]을 보고 나면 우리는 일곱 가지중 하나의 악행에는 해당이 된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차도녀, 차도남이라는 가면을 쓴 채로 우리는 나 자신에게 또는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악행은 상처를 남길뿐이다. 그래서 나쁜행동인 것이다.

태그    악행, 무감각, 동일성, 자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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