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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TV와 친밀한 관계가 아니다. 일주일간 TV 시청시간은 채 두어 시간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가요 프로그램을 시청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인기있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 대부분을 꿰고 있다. 이따금 흘러나오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는 딱히 외우려 노력하지 않아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노래에서 흘러나오는 똑같은 단어의 반복이 자연스럽게 중독과 각인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대중가요의 지배자는 아이돌 그룹과 후크송이다. 아이돌 그룹의 대중가요 지배는 오래전부터 지속돼 온 사실로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90년대에 활동한 H.O.T, 젝스키스, SES 등의 아이돌 그룹은 한국 대중가요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한국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후크송의 폭발적인 재생산은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이제 후크송은 유행을 넘어 범람의 수준에 다달았다. 후크송을 빼고 한국의 대중가요와 아이돌 그룹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과연 후크송은 도대체 무엇인가. 후크선장 팔에 달린 갈고리에서 노래라도 흘러나온단 말인가. 후크송은 짧고 매력적인 반복구를 삽입해 '후킹 효과'를 유발하는 노래를 말한다. '후킹 효과'란 후크송의 반복구가 뇌리에 남아 무의식 중 그 기억을 다시 반복 재생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후크송의 반복구를 흥얼거린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후크송으로는 원더걸스의 'Nobody'와 소녀시대의 'Gee'가 있다. 두 곡 모두 전국민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조사 결과 원더걸스의 'Nobody'는 'Nobody'가 약 60회, 소녀시대의 'Gee'는 'Gee'가 약 50회 반복됐다. 이 정도면 주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10년이 지나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멤버들이 30대에 접어들어도 'Nobody'와 'Gee'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오늘날 가요계의 지배자인 아이돌 그룹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후크송을 내놓고 있다. 그들이 후크송을 고집하는 이유는 대중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전달하기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티아라 멤버의 이름은 알지 못해도 'Bo Peep Bo Peep'가 들려오면 자연스럽게 티아라를 떠올린다. 원색계열의 자극적인 의상과 함께 후크송은 아이돌 그룹의 훌륭한 이미지 메이킹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가요계의 후크송 범람 현상은 음악의 다양성과 예술적 측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똑같은 멜로디와 단어가 반복되는 노래의 예술적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분명 수십 번 같은 음악을 들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한 마디 단어 뿐이다. 어느새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사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가사에 의미를 담기보다는 가수의 이미지를 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노래는 못 불러도 외모가 출중하면 아이돌 그룹이 될 수 있었던 시절은 지났다. 요즘 아이돌 그룹의 가창력은 과거에 비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하지만 그러한 실력을 똑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데에 낭비하고 있다. 우리의 아이돌이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앵무새가 아닌 진정한 아티스트로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