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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얼마를 걸었을까. 한참 전부터 표지판은 '예술의 전당'을 가르키고 있었지만, 아직 그 곳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30분을 걸어 도착한 예술의 전당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다행히도(?) 대부분은 '모네에서 피카소까지' 관람객이었다) '우리나라에 예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었나?'라고 중얼거리며 루오전시관을 찾기 위해 또다시 몇 분을 허비. 우여곡절 끝에 생애 처음으로 루오와의 만남을 가졌다. 빙글빙글 돌고 돈 것은 그와의 첫만남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을까. 그의 작품을 보는 내내 머리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됐고, 전시관을 빠져나오는 순간 가슴에 파고든 무엇인가의 꿈틀거림을 느꼈다.

<루오가 생전 사용하던 채색도구들>

눈물을 흘리는 것마저도 사치였던 그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루오는 그들의 슬픔과 내면의 고통을 작품에 담고자 했다. 때문에 서커스라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전혀 밝지 않다. 그는 형형색색의 복장과 대비되는 광대의 어두운 얼굴과 검은 눈을 통해 그들의 삶의 그늘을 표현했다. 즐거운 서커스 속의 슬픈 광대들을 통해 루오는 밑바닥 사람들에 대한 당시 사회의 차별과 무관심을 적극적으로 고발한다.

<부상당한 광대>

'미제레레', 죽음과 신에 관한 루오의 망상록

죽음을 주제로 한 판화 연작 '미제레레'는 예술과 종교를 결합시키려는 루오의 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루오는 깊은 슬픔과 충격에 빠진다. 그는 자신의 내면적 상처를 '미제레레'를 통해 예술적으로 구체화 한다. 흑과 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판화여서 일까. '미제레레'는 무거움을 넘어 엄숙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작품 속에는 썩어가는 시체와 해골이 난무한다.

"나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느낄 수 있는 것뿐이다."

화가이자 종교인이었던 루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신을 통해 고통과 죽음을 승화시키고자 했다.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해골과 십자가, 그리고 예수의 조합은 그러한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 죽음과 신의 만남. 그것은 종교인이었던 루오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한 루오에게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종교인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미제레레' 속에는 격동의 시대를 산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잘 드러나 있다.

완성되지 못해 더 아름다운 미완성작품들

루오의 풍경화는 정밀한 묘사보다는 크고 거친 붓터치로 표현된다. 조금은 어두운 혼합색과 대략적 묘사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만든다. 완성되지 못한 그의 작품에서 관람객들은 조용히 속삭이는 루오의 목소리를 듣는다. '나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당신의 상상에 맡긴다.'

<가을(해질 녘의 검은 나무), 1948~1945>

종교예술의 애호자이자 인간애를 작품 속에 담으려고 했던 루오. 그의 말처럼 인간의 삶은 한 편의 서커스이며, 우리는 그 속에 등장하는 광대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의 서커스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

※색체의 연금술사, 루오展
 : 이번 작품전은 그의 모국, 프랑스에서도 공개되지 않았던 14점를 비롯해 총 168점의 걸작을 한 자리에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 장    소 :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 기    간 : 3월 28일까지 계속(매월 마지막주 월요일은 휴관) 
 △ 관람시간 : 오전11시 ~ 오후7시
 △ 문의사항 : 02-585-9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