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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소 일상적인 대화는 많이 안해요. 세희와 저의 일상적 대화는 예술, 시사, 문화적인 소소한 사건들이 대부분이죠. 밥 먹었니, 어디 가니, 오늘은 뭐했니 등 마치 시간을 체크하는 듯한 대화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세희가 유학 가 있을 당시에도 전화로만 1시간 정도를 시사적인 이야기로만 수다를 떤 적이 한두 번이 아닐 정도니까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대화가 너무 재밌고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것 같아요.”다른 듯 닮은 엄마와 딸황재복 디자이너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이대 디자인 대학원에서 의상디자인을, 성균관대학에서 예술철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력을 지녔다. 사회 및 문화의 각 분야에 다양한 관심을 가져 그런지 언제나 연구하고,끊임없이 탐구하는 자세가 몸에 뱄다. 아마도 이런 엄마의 성향을 어릴 적부터 보고 배워 자랐는지 세희 씨도 경제, 예술, 시사 등 모든 것에 관심이 많고‘알고 싶은’욕심이 많다.“보통 일하는 엄마를 두면 경제적으로 충만할 지 모르겠지만 정작 엄마의손길이 필요할 때 엄마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저라고 그런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때마다 엄마는 엄마만의 방식대로 저를 위해 물심양면 아끼지 않고 뒷받침해주셨죠. 어릴 때부터 그런 상황을 알았기에 그다지 큰 불만은 없었어요. 일할 때의 엄마는 황재복 디자이너였고 집에오면 온전히 저만의 엄마였죠. 그 역할에 대해 인정하고 나누다 보니 그렇게 불편한 건 없었어요. 엄마가 화장을 하고 멋지게 성장을 하시면‘황재복 디자이너구나’하는 거고, 화장을 지우고 저와 대화를 하는 엄마를 보면‘우리 엄마구나’하는 거죠. 난 왜 엄마가 내 옆에 항상 없을까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지 않았어요.”일찍 철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세희 씨는 가냘픈 체구와 고운 외모 뒤에 숨겨진 강인한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렇기에 중학교 시절 홀홀단신 유학을 가서 올바르게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고등학교 시절 수많은 미국인 학생들 앞에서 한국 노래를 부를 만큰 배짱도 든든했고 동양인한 명 없던 모임에 일부러 가입해 열심히 서양인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자부심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기도 했다. 그야말로‘야무진 여자’다. 유학 시절이 오히려 편하고 좋다고 말할 정도로 미국에서 똑소리나게 공부했던 세희 씨가 한국에 올 결심을 하게 된 건 엄마의 자연스런 권유 때문이었다고. 평소 황재복 디자이너는 딸과 수많은 대화를 자주 나누는 데 그 가운데 하나가‘배운 것은 나라에 환원하자’는 것. 엄마와 딸의 대화에서 쉽게 나올 수 없는 건설적인 내용이기도 하다.“제가 보기에 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세희는 기성세대가 느끼고는 있었지만 표현할 줄은 몰랐던 사실에 대해 논리적으로 표출을 하고 정리를 할줄 아는 영리함을 갖고 있어요. 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존재하는 예쁜 아이예요. 아마 배려심이 과한 아빠의 성향을 물려받았는지 25살이라는 나이에 안 맞는 차분함과 배려심이 있어요. 그래서 예쁘죠. 이런 아이가 배운 해박한 지식들을 우리나라의 사회 요소요소에 꼭 써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세희도 같은 생각일거라 믿고요."수많은 문화가 지적재산권을 갖지 못해 합당한 대우를 못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엄마 황재복 디자이너의 웨딩드레스도 마찬가지의 경우다. 비단 황재복 디자이너의 드레스뿐만 아니라 한국 대다수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은 제대로 보호받고 있지 않다. 이른바 디자인에 대한 지적재산권이나 저작권이 부여되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게 세희 씨의 지론이다. 그래야 한국 문화가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논리를 조목조목 말하는 이런 딸을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렇게 자랑스러운 딸을 쉽게 결혼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