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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손에 걸리는 것'을 걸치고 다니던 기자가 난생 처음 패션쇼장을 찾았다. 장소는 학여울역에 위치한 서울무역전시장(SETEC), 지난 26일 국내 패션쇼의 대표격인 '서울패션위크 F/W 10/11'의 막이 오른 곳이다. 전시장은 활발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바삐 뛰어다니는 관계자들과 입장을 위해 길게 늘어선 수많은 관람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델 못지않은 독특한 스타일을 자랑하는 관람객들이 기자의 주변을 스쳐갔다. 패션잡지 속에서만 보던 스타일로 코디한 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과 패션인들 사이에서 기자는 왠지 모를 주눅이 들었다.

 
  박종철 디자이너의 '슬링스톤(SLING STONE)' 쇼는 전시장 깊숙한 곳에서 진행됐다. 운좋게도 VIP석 바로 뒤에 앉아 쇼를 지켜볼 수 있었다. 온통 검은 색으로 장식된 쇼장은 아담한 규모였다.

  어둠속에서 빗소리가 울려퍼지며 쇼의 시작을 알렸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배경으로 한 모델의 영상이 정면에 나타났다.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음악과 함께 검은 옷을 입은 모델이 등장했다. 천천히 그리고 무겁게, 그의 발걸음은 무미건조한 표정만큼이나 어두운 그림자를 찍어내고 있었다. 이어서 모습을 드러낸 모델들도 고독을 암시하는 검은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음악은 절정으로 치달았고, 쇼는 엄숙한 분위기마저 풍겼다.
 

  '슬링스톤' 쇼의 테마는 '도시속의 젊은이들(Young Urban Dwellers)'이다. 쇼는 그들의 고독과 외로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한쪽 눈을 가린 모델의 헤어스타일은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일까. 구두에서 스니커즈, 다시 구두…. 그러한 반복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들의 내면을 암시하는 듯했다.

 
  긴장감이 감도는 음악으로 바뀌며, 전보다 격식있는 스타일이 등장했다. 차갑고 어두운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졌지만 그들의 옷은 아직도 깜깜한 밤이었다.

  갑작스럽게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왔다. 동시에 흰색이 가미된 스타일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눈 내리는 영상이 정면에 떠올랐으며, 분위기는 한층 밝아졌고 모델들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완전히 흰색의 옷이 등장함과 동시에 강한 빛의 조명이 정면을 비췄다. 빛은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밝았고, 영상속 눈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마지막 모델이 빛을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표정은 아무 변화가 없었지만 보는 이들은 새로운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둠에서 빛으로의 전환, 쇼는 암울한 분위기에서 시작됐지만, 밝고 희망차게 끝을 맺었다.
 

  생각보다 패션쇼는 그리 길지 않았다. 15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처음 접한 패션쇼는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다. 왜 '쇼'라는 타이틀이 들어갔는지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디자이너가 쇼를 통해 전하고자 한 바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 쇼에 대한 해석을 내려보는 것 또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슬링스톤'을 직역하면 '돌을 던진다'라는 뜻. 그 돌은 도시속 젊은이들의 가슴에 던져진 것인가, 그들이 세상을 향해 던진 돌인가.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사진제공 : 신희식 클레버스 기자